제주밭 이야기

풍요로운 향미(香味)의 마법사, 맥주보리

| 2024년 5월 9일

#제주밭풍경# 5월의보리# 제주보리# 맥주보리

 

 

어느덧 청보리가 노랗게 익었습니다. 이제야 5월인데, 가을이 온 건가 착각할 정도로 제주밭은 황금빛 보리 물결이 한창입니다. 

청보리가 바람 부는 대로 살랑살랑 나부끼는 나비 같다면, 익어가는 보리는 바람에 마른 잎을 흔들며 야생적인 소리를 내는 대나무밭 같습니다. 

쏴~ 하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제주 곳곳에서 익어가는 이 보리는 대부분 맥주의 원료인 맥아가 됩니다. 그래서 이름도 ‘맥주보리’랍니다.

 

 


 

▲ 황사평 마을 

 

맥주보리는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 겉보리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에 처음으로 ‘제주’에서 파종하고 재배해왔습니다. 

따뜻하고 연중 강수량이 고른 지역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내륙 지방이나 추운 곳에서는 아예 키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와 남부 해안 지역에서만 재배하죠. 그중에서도 제주도는 맥주보리를 키우기에 최적화된 지역입니다. 보리 종자에 함유된 단백질의 

양이 적을수록 보다 좋은 품질의 맥주를 만들 수 있는데, 화산섬인 제주의 토양은 물을 머금기가 어려워 식물 종자 내 단백질 합성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풍부한 효소로 다양한 향과 맛을 내는 보리맥아는 다른 곡물을 제치고 맥주 재료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맥아로 만들지 못한 낟알로 밥을 해먹기도 하고, 보리 낟알을 싹 틔워 말린 맥아로는 고추장이나 엿기름, 식혜를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보리가 효소를 품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맥아가 건조와 로스팅을 거치며 다채로운 향과 맛을 부릴 수 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때론 과학자 같고, 때론 마술사 같은 맥아가 제주밭에서 풍성히 자라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 햇살과 바람에도 노랗게 익으며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는 보리 물결을 보니, 어쩐지 오늘은 맥주 한 잔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맥주보리가 어떤 마법을 부릴지, 입안에 머금고 곰곰이 따져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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