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제주밭을 탐험하는 요리사

COSI Lab 신정원 요리사님 | 2023년 8월 18일

#제주밭사람들

 

 

농사 지으며 요리하는 신정원 요리사님, 그의 텃밭이 있는 조천읍 신촌을 찾았습니다. 폭 6m, 길이 12m 정도의 작은 하우스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채소로 가득합니다. 제주밭에서 밭 농사를 지으며 요리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들었습니다.

 


 

 

제주밭에서 자급자족을 꿈꾸다

“저는 전라도 영암이 고향이에요. 주변이 다 논밭이고, 농사인구도 많은 곳이죠. 가족이 먹을 만큼의 작은 텃밭에 농사를 짓는 모습을 주변에서 보며 자랐어요. 어머니 또한 작은 텃밭을 일구셨고, 직접 재배한 채소를 먹으며 컸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농사에 대한 생각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이 먹을 만큼이라도 키울 수 있게 조그마한 밭을 갖고 싶었죠. 요리를 배우면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작물을 그냥 기르는 게 아니라 농사를 잘 지어야 건강한 먹거리를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농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로컬 식재료에 대한 활동을 하는 식당에서 일자리를 구해 제주에 내려오게 되었어요. 퇴사하고 나서도 계속 로컬푸드 연구회, 다품종 소량생산 연구회 활동을 하며 농부님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고, 감사하게도 올바른농부장 대표님에게서 빈 밭을 받아 실제로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전부터 다른 사람에게 요리해주는 것을 좋아했어요. 내가 만든 건강한 요리를 많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죠. 그런데 농부님들에게서 농사를 배우고 일을 도와드리다 보니, 정작 농부님들은 밥도 제대로 못 드시며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농부님들에게 밥을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 출점한 농부님들에게 식사를 차려드릴 기회가 생겼어요. 지금은 올바른농부장의 공간 달진밧에서 한 달에 한 번, 농부장이 열릴 때마다 푸짐한 식사를 책임지고 있어요. 농부님들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드실 수 있게 제주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건강한 식사를 준비해요. 또, ‘COSI Lab’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며 요리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실천해 나가고 있어요. 농부님들이 들려주는 농사 이야기와 그 제철 작물들로 요리한 이탈리아 가정식을 엮어 기획한 ‘제주밭한끼 워크숍’을 진행하고, 격월로 ‘정원의 제주밭한끼’ 레시피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제가 제주밭에서 느꼈던 것을 모두 모아 사람들에게 경험시켜 주고 싶어 기획한 프로그램들이에요. 이 외에도 지역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행사라든지 생산자들과 함께 팜투테이블을 기획하기도 해요.”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은 말 그대로 ‘농장에서 식탁으로’라는 뜻이에요. 식재료를 생산자에게서 직접 구매하여 요리한 음식을 먹는 거죠. 도소매 마트나 식자재 유통업체를 이용해 식재료를 공급받는 일반 식당과 달리, 식재료가 유통되는 과정을 짧게 줄인 거예요. 제가 요리하면서 가장 관심있게 생각하는 것이 제로킬로미터 푸드(zero-km food)인데요, 생산되는 곳과 소비되는 곳 사이의 거리가 0 킬로미터라는 의미에요. 팜투테이블과 비슷한 맥락이죠. 쉽게 말해 로컬 푸드, 되도록 가까이서 재배한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요리하는 것이에요. 실현하고자 항상 노력해요. 어쩌면 내가 직접 재배한 작물을 먹는 자급자족도 비슷하네요, 자급자족을 통해 제로킬로미터 푸드를 실천하는 거죠.”

 

 

이탈리아에서 배운 요리와 농사

신정원 요리사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음식을 통해 무형의 무언가를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신 요리사님이 이탈리아에서 함께 지낸 가족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탈리아 가정식을 주로 요리하는 이유도 이 가족과 함께 먹은 음식이 특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피렌체 근교 시에나에서 함께 지낸 가족이에요. 그냥 이탈리아의 평범한 가정, 요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아니었는데 음식에 대한 특별한 태도가 있었죠. 직접 농사를 지어 계절별로 여러 채소를 건강하게 키우고, 또 가까운 곳에 있는 생산자분들에게서 식재료를 직접 구매했어요. 요리를 할 때면 그 음식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재료가 어디서 자란 건지, 누가 키운 건지, 재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오래 함께 지내다 보니 그 영향을 받아, 그분들의 음식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운 것 같아요. 계속해 실천하고 싶어요. 농사도 그분들처럼 최대한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짓고요”

 

 

요리사의 텃밭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친환경 농사를 짓는 게 당연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비료 주고 물 주고 하면 잘 자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주변 농부님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며 재배법을 배우고 있어요. 벌레가 많아 당황스럽기도 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가 사라져서 힘들긴 하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친환경적인 농사법을 체득하려 하는 거라 친환경을 고수하고 있죠. 생태농도 시도해보고 싶어요.”

 

 

 

8월의 날씨는 한여름이지만, 밭은 벌써 가을을 위한 준비가 한창입니다. 지난 달 여름 작물인 토마토, 가지, 애호박 등을 모두 수확하고, 지금은 앞으로 심을 가을 작물을 위해 밭을 정리해놓은 상태입니다. 땅에 씨를 바로 심기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 작은 포트에 모종을 낸 뒤 어느 정도 크면 땅에 정식합니다. 포트 한 판에 무려 7가지 작물이 심어졌네요.

 

    

 

 

“올해 3월 밭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는데, 토마토, 가지, 애호박, 깻잎, 오이 등을 심어 수확했어요. 봄에는 예닐곱 종류의 샐러드 채소도 심었고요, 바질, 타임, 세이지, 민트 등 허브도 있어요. 지금 모종으로 내는 건 샐러드 채소와 감자, 당근도 있네요. 배추나 무 같은 월동채소도 도전해보려고요. 그리고 제주에서는 토마토를 가을에도 재배할 수 있다고 해서 시도해보려 해요. ”

 

“저는 평소에 잘 먹고 요리할 때 자주 쓰는 채소를 위주로 키워요. 특히 토마토는 이탈리아 요리를 할 때 가장 많이 쓰이고, 마음에 드는 토마토를 직접 재배해서 토마토소스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제주의 토양에 알맞고 맛도 마음에 드는 품종을 찾기 위해 올 여름에 9종의 토마토를 심었고, 이번 가을 작기에는 세 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요. 여름에 맛이 좋았던 1종과 새로운 2종을 시도하려고요. 좀 더 다양하게 심어봐야 알 것 같지만, 현재까지는 일본산 씨앗에서 난 토마토가 가장 맛이 좋았어요. 이탈리아에서 소스로 사용하는 토마토는 즙보다 과육 비중이 높고, 토마토 자체의 단맛과 산미가 풍부해요. 한국에서 재배되는 토마토는 반대로 과즙이 많죠. 단맛도 약하고요.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에어룸 토마토도 심었는데 잘 나지 않았어요. 맛도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토마토에 비해 아쉽더라고요.”

 

 

 

요리사의 바람

“아무래도 제주라 하면 감귤이잖아요? 제주밭에는 만감류 말고도 다양한 작물이 있는데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주에서 오래 재배되어 온 작물들도 있고, 새롭게 재배되는 작물들도 다양해, 알면 알수록 새롭고 재밌어요. 사람들이 이런 먹거리에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좋겠어요. 뭘 먹을지, 무엇이 건강한지 인터넷에서 찾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밭은 종종 거닐면서 그 작물들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나 로컬푸드 마켓에 가본다든지 … 작물들을 자주 맛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나가는 습관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스스로 몸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건강이라는 단어에 대해 꾸준히 생각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죠. 농사와 음식의 미래는 그걸 맛보는 사람의 혀끝에 달려있어요. 음식을 먹는 우리 모두가 그 책임감을 느끼면서 먹거리에 대한 진중한 탐험을 해나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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