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밭작물로 만든 도시락과 함께한 가을 소풍
태풍 콩레이가 지난 후 제주의 날씨는 다시금 맑게 빛났습니다. 가을은 피크닉하기 완벽한 계절인데요. 11월 1일부터 12일까지 제주에서는 <밭한끼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밭한끼는 밭에서 재배한 농산물과 채소로 건강한 한 끼 음식을 차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 축제는 제주의 밭작물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음식 문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밭작물로 만든 빵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음회를 비롯해 밭작물을 활용한 베이킹, 칵테일 만들기, 여행 체험 등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프로그램은 선흘 마을 주민들이 만든 <꽃덤불 소풍>입니다. ‘꽃덤불’은 꽃이 어우러진 수풀을 뜻하는 우리 말입니다. 프로그램의 리더인 현경숙 님이 자신의 정원에 붙인 이름이기도 하고요. 그곳은 정성과 시간으로 가꿔온 그의 사유지이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과 이 아름다운 정원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꽃덤불 소풍>은 선흘 마을의 다양한 그룹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인데요. 우선 앞서 소개한 꽃덤불을 가꿔온 현경숙 님은 <사회적협동조합 인다라>의 책임을 맡고 있고요. 맛있는 밭한끼 소풍 도시락을 만드는 팀은 <선흘식탁>입니다. 그들은 모두 선흘 마을에 살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마을 공동체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데요. 이번에 <밭한끼 페스티벌>에도 함께 참여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꽃덤블 소풍> 현장으로 함께 가볼까요?
#잘 살고 계신가요?
가이드와 함께 숲길을 산책하며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참가자들은 이 시간을 통해 제주 자연과 소통할 수 있었는데요. 마을 입구에서부터 꽃덤불까지 함께 걸으며 마을을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이 마을 이름은 ‘억수동’인데요. 억수란, 물이 풍부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30분 정도 걸으며 나무 이름에 대해서 묻기도 하고 제주 4·3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제주의 아픈 역사와 현실을 이어가는 자연의 생존력을 동시에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숲길을 걸으며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나직이 안부를 묻기도 했죠. 어디에서 온 누구이고,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어요. 다들, 제주 여행은 즐거우신가요?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잘살고 있나요?… 소소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인사가 오간 후, 산책의 끝에 이르자 꽃덤불이 나타났습니다.
#선흘식탁의 밭작물 도시락
정원 한쪽에는 오늘의 피크닉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어요. 제주 밭작물로 건강한 식사를 제공하는 선흘식탁이 만들었는데요. 도시락에는 인공 조미료 없이 만든 김밥과 샌드위치가 들어있었어요. 그리고 도시락 옆에는 갓 끓여 만든 듯한 호박 수프도 준비되어 있었어요.
바로 참가자 중 한 사람의 추천 음식인데요. 이번 프로그램에서 특별했던 점은 참가 신청할 때 ‘좋아하는 음식’ 혹은 ‘위로받은 음식’에 대한 사연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 참가자들의 음식과 사연 중 하나를 뽑아서 선흘식탁에서 정성껏 요리를 준비했는데요. 그렇게 마련된 음식이 호박 수프였어요.
참가자들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꽃차를 즐겼습니다. 그들의 앞에 놓은 호박 수프와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던 거죠.
각자 살아온 삶은 다를지라도, 그날 그 시간만큼은 같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헤아릴 수 있었을 거예요. 누구나 같은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같은 세계를 살 수 있으니까요.
#디저트 타임
따뜻한 밭한끼 식사가 끝난 후에는 디저트로 군고구마가 나왔습니다. 또한 도시락의 용도를 변경해서 미니 마가렛 화분을 만들었는데요. 마가렛 꽃은 겨울에도 아름다운 흰색 꽃잎으로 피어난다고 해요.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현경숙 님이 밭에서 방금 채취한 묘목을 사용하여 화분에 심는 방법을 시연했습니다.
세이지와 아마란스로 가득 찬 꽃덤불 정원에서 참가자들은 그사이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기 싫어하는 눈치였어요. 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한참 동안 이야기 나눈 후에야 안녕 하고 돌아섰는데요. 그날의 따뜻한 호박 수프와 밭작물로 만든 선흘식탁의 맛있는 도시락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듯해요.
*꽃덤불 소풍은 일반적으로 ‘꽃피어수다’라는 이름으로 예약하실 수 있으며, 연중 내내 진행됩니다. 따라서 축제가 끝난 후에도 가을 피크닉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