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선흘리에 있는 볍씨학교 학생들은 매일 건강하고 소박한 한끼 문화를 만드는 꿈을 가지고 다양한 밭작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들 중 민영, 서희, 재우는 유기농 콩을 키우며 템페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내일 위한 한끼’를 목표로 한 세 친구와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매니저를 자처한 하성란 씨를 만나보았어요.
경기도 광명에 있는 볍씨학교 본교에서는 중3이 된 학생들을 제주시 선흘리의 제주학사 볍씨학교로 보냅니다. 그곳 아이들은 아침마다 동백동산을 달리고 저녁에도 운동을 해요. 잠들기 전에는 하루 나눔을 합니다. 말 그대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아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17살 민영, 서희, 재우는 2022년부터 템페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 사업을 더 확장하고 싶어서 <제주밭한끼>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어요. 재우는 자신들이 농사지은 콩이 어떻게 템페가 되어 일상의 식탁에 오르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손수 농사를 짓고 건강한 식탁을 차리는 일이 내일을 위한 한끼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답니다.
휴대전화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소통망이 되어준 성란 씨는 자연치유프로그램을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 인다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볍씨학교 친구들과 결합해서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했는데요. 그들 팀 이름은 ‘선흘살레’입니다. 살레는 제주어로 찬장을 뜻하는데요. 그들이 진행한 프로그램은 선흘에 있는 살레를 경험하는 일이라고 해요. 이것은 단순히 가정의 찬장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내일을 위한 한끼’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농사지은 콩이 템페가 되어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알려주고 찬장에 담긴 소중한 밭한끼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그런 후 그들이 일구는 밭작물이 바로 내일을 위한 한끼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누구나 그들처럼 건강하고 든든한 밭한끼를 만들 수 있음을 전달합니다.
제주밭이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해봤어요. 재우에게 ‘제주밭은 생명이 자라는 곳’이고요. 서희에게는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에요. 그들은 5천 평 농사를 짓는데 트랙터나 중장비 없이 삽질로만 일합니다. 유독 돌이 많은 제주밭에서 삽으로만 농사짓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이 아이들은 그 질문에 응답하듯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하나의 돌을 만날 때마다 이게 가능할까? 묻지만 다시 땅을 파는 거죠.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완성된 밭을 봤을 때 그들은 굉장히 뿌듯해진다고 합니다. 볍씨학교 친구들이 일군 밭의 모양은 개성이 넘칩니다. 그들은 즐기면서 일하려고 고등어 모양, 레몬 모양으로 밭을 만들었거든요.
끝으로 민영이 이야기해준 제주밭의 의미에 대해서 직접 들어볼게요.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밭은 달라져요. 저희는 농약과 장비를 일체 안 써요. 그렇다고 비닐을 깔아서 검질이 안 자라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삽질할 때 힘들고 겨울 되면 손이 얼고 여름 되면 땡볕 때문에 힘들어요. 그런데도 밭작물은 잘 자라요. 워낙 땅이 좋아서 작물이 잘 이겨내는 거예요. 돌 때문에 삽질이 힘들지만, 그 돌이 있기 때문에 농사가 되는 거예요. 이제는 제주밭을 통해서 돌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주밭은 저에게 새로운 경험을 해주게 하는 스승이에요.”
본 콘텐츠는 제주시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 2023년 활동보고서 <제주밭한끼 : 제주밭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 책자에 실린 인터뷰 글을 재편집하여 소개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