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겨울은 다시 봄의 손을 붙잡고
계절의 이어달리기는 어느새 마지막 주자인 겨울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마지막 주자가 아니었지요.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봄'은 또다시 이어달리기 배턴을 받을 준비를 '어디선가' 하고 있을 테니까요. 코끝이 시린 겨울의 한가운데서도 자연은 쉬지 않았고,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쉬지 않기에 제주의 밭작물도 열심히 순환하고 있습니다. 유채꽃에서 청보리로, 청귤에서 메밀로, 양배추에서 월동무로… 밭은 계속해 작물을 잉태합니다. 그 모습은 전혀 억지스럽지도, 애를 태우지도 않았고요.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왜 ‘자연(自然)’에서 파생되었는지 제주밭을 보며 알아가는 한해였습니다. 또한, 사시사철 밭에서 때에 맞는 작물을 기르는 농부와도 마주했습니다. 그들을 보며 사람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키우게 하는 데서 큰 기쁨을 얻는구나. 그것 역시 자연의 섭리임을 깨닫는 한해였습니다.
‘제주밭 열두 달’을 함께한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한 번쯤 길 가다 마주한 밭에서 자라나는
싹을 유심히 살펴보는 여유가 생겼다면, ‘잘 자라라’ 하며
응원하는 마음을 보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듯합니다. 초록색을
보면 브로콜리를, 주황색을 보면 당근을, 흙을 보면 감자와
고구마를 떠올리신다면… 제철작물을 이용한 간단한 저녁식사 메뉴를 떠올리신다면… 그러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