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제철 열매가 가져다주는 행복
지난 10월 8일은 한로였습니다.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날로,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어서 가을타작을 준비하라는 자연의 신호지요. 그래서일까, 요즘 제주는 한껏 분주합니다. 여름이 길었던 탓일까요? 가을열매를 맞는 부산스러움조차 기쁘고 즐거워보입니다.
제주의 가을 풍경은 이러합니다. 여름내 푸른 잎사귀 속에 숨어 있던 귤들이 매일 조금씩 노랗게 얼굴색을 바꾸는 중이고요, 곳곳의 감나무들은 무거워진 열매에 가지를 늘어뜨립니다. 붉게 익어가는 대추는 달콤한 향기마저 뿜어내,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지난 봄에 한번 거둬들였던 메밀꽃은 또 언제 이렇게 화사하게 피었을까요?
여름을 견딘 나무들이 막 해산한 여인처럼 저마다의 열매를 품고 자랑하는 가을 풍경을 보니, 이 햇작물들을 소중한 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가을만 되면 제철 작물을 바리바리 싸서 육지로 유학간 자식들에게 보내느라 더 바빴나 봅니다. 하긴, 제철 작물을 선물하는 것보다 더 건강하고 다정한 안부인사가 또 있을까요?
김신지의 <제철 행복>에 보면, 가을엔 '오랜 산책'이 제철이라는 말이 나온답니다. 깊어진 가을하늘을 벗삼아 제철의 행복을 느끼러 산책 한번 다녀오심이 어떠신지요? 다람쥐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주의 밤과 조밤을 몇 개 주워와 구워드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