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별처럼 많은 질문을 품고, 농사를 짓습니다-
제주 생태농부 커뮤니티 <별앗간 농부들> 인터뷰
<별앗간 농부들>은 2023년 봄부터 '지구 위 모든 존재를 위한 농사실험'이란 슬로건으로 다양한 활동을 프로젝트팀입니다. 자연과 사람이 상생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하는 10명의 친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다양한 실험 앞에는 언제나 '무해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고요. 어떤 행사를 하든 일회용품 없이, 음식물쓰레기 없이, 남김없이 나누고 수확하죠. 얼마전 그들의 밭에서 맛있는 옥수수를 수확했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건강하고 단단하며 무해한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졌습니다. 농부들 중에서도 수박, 감자, 노지딸기, 그리고 보리님이 질문에 답변해주셨습니다.
Q. '별앗간 농부들'이라는 이름이 무척 재미있어요. 참여하시는 분들을 '참새'로 부르는 것도요. 어떤 계기와 어떤 마음으로 이름을 지으셨을까요?
‘별’처럼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함께 농사를 짓기에 ‘별’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갔으면 했어요. 또 우리의 공간이 단순히 농사를 짓는 밭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들르고 싶어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래서 '방앗간'의 의미를 넣었고요. 그래서 그 둘의 합성어인 ‘별앗간’이 탄생했습니다. 방앗간처럼 이곳을 자연스럽게 찾아주십사 하고 ‘참새’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참여자들을 부르게 되었고요.
Q. '제주 생태농부 커뮤니티'로서 하고 계신 일들, 특히 '무해한 프로젝트'들이 인상 깊어요. 어떻게 이런 꿈을 꾸게 되셨나요?
[수박] 우리가 사랑하는 섬, 제주는 청정과 친환경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전국 단위면적당 농약사용량이 타지역에 비해 4배, 화학비료사용량이 2배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 사실을 알고난 뒤부터 기존 제주 농업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무해한 농사실험'의 시초가 되었어요. 생산량 증대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생태계 안에서 최대한 조화롭고 이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한 농사의 방법임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위해 삶을 일구어요”라는 비전을 품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농사 이외의 삶에 대해서도 무해한 방식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불편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삶이요.
[노지딸기] 마트에 가면 '친환경' 마크를 달고 나온 작물들이 많아요. 친환경이기에 조금 비싸도 사먹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환경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어 찾아보다가 유기농 작물에도 살충제를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유기농 살충제에는 구리 기반 살충제, 로텐온, 천연 니코틴 추출물질, 피레트린등 천연 살충제 등이 있습니다. 천연물질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 천연물질도 자연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살충이라는 목적이 있지요. 인간이 사용하는 '친환경'은 환경에 덜 나쁘다는 의미이지, 환경을 좋게 만드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무해한 프로젝트 일환으로 환경을 좋게 만들 수 있는 자연농법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관찰하고 알아가는 단계라서 수확량이 많지 않지만, 자연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자연도 제게 자신의 일부를 허락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별앗간 농부들이 진행하는 여러 가지 '무해한'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몇 가지 소개해주신다면요?
[수박] 별앗간 농부들의 가장 큰 장점은 ‘무해한 농사’를 10명의 청년들이 함께 짓는다는 것이죠. 각각의 다양한 모습으로 삶의 방식을 제안할 수 있어요. 그렇게 시작된 무해한 프로젝트에서는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일 외에도, 텃밭 재료로 샌드위치와 허브 스머지스틱을 만들고, 텃밭에서 명상도 했어요.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해한 고구마 수확 대잔치날이에요. 비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더이상 수확을 미룰 수 없었던 상황이라 그대로 진행했죠. 결국 비가 쏟아져서 중단하려고 했지만 참가자 모두가 괜찮다며 비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수확해주셨어요. 함께 밭에서 비 맞으며 수확한 추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노지딸기] 앞에서 고구마를 수확한 이야길 했는데, 저는 무해한 고구마 심기 프로젝트가 생각나네요. 그 중에서도 새참으로 먹었던 야채비빔밥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일회용품 하나 사용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도 남지 않았던 아름다운 식사였어요. 식사 후에는 어린 친구들부터 어른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땅에서 돌을 고르고, 고구마 줄기를 심었습니다. 지나고보니 단순히 작물을 심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한 곳에 모여 무해한 시간을 보냈던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보리] 지금 진행하고 있는 '별앗간 클럽'에 대해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현재는 비빔면 클럽과 김치 클럽을 운영하고 있어요. 비빔면 클럽은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풀베고!’라는 슬로건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골칫덩이라고 생각하는 잡초는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땅의 수분을 조절해주기도 해요. 베고난 풀은 훌륭한 멀칭제로 쓰이고요. 잡초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풀을 베고 맛있는 비빔면을 함께 먹는 클럽이예요. 밭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를 듬뿍 넣은 비빔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그리고 김치 클럽은 ‘심고 키우고 수확하고 요리하고!’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클럽이에요. 이름대로 김치 작물(배추, 무, 갓, 고들빼기, 열무 등)을 키우고 수확하고 겨울에 함께 김치를 담그죠. 작물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알고, 직접 수확하고 손질하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클럽을 만들게 되었어요.
Q. 얼마 전 별앗간 농부만의 옥수수를 수확하셨지요? 옥수수 자랑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초당옥수수는 사실 초여름 작물이라 주위에서 “그거 안 돼!” “그게 되겠어?” 하며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았는데요. 우리는 '지구 위 모든 존재를 위한 농사실험'을 하는 팀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한 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며 가을 옥수수 재배라는 모험도 해보았습니다. 농수로가 없어서 비가 오는 날에 맞춰 심고, 모종이 아닌 씨앗으로 두 세알씩 심었던 초당옥수수가 싹을 틔우고 무사히 자랐어요. 흙이 가진 힘과 적당한 때에 내려주신 비와 농부들의 수고가 함께 이뤄낸 일이라 수확하는 밭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그저 잡초와 함께 자란 제주의 가을 초당옥수수예요. 고맙고 기특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