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야생에서 만나는 제주밭의 계절 이야기
제주에는 제주밭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중에서도 야생과 가까이 지내며 제주밭 본연의 모습을 담아가는 팀 <초록씨그린씨>의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우선 그들을 소개할게요.
“‘초록씨그린씨’ 그린디자인스튜디오이자, 그린디자인, 마을디자인, 생태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2006년 전시하면서 그린씨GreenC.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10여 년 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 계간지에 그림에세이를 연재할 때, ‘초록씨그린씨‘라는 이름을 얻게 되어서 마음에 품고 있다가, 그린디자인과 프로그램 기획을 위해 다시 사용하게 되었어요.”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은 ‘그린씨’입니다. 그린씨는 생명의 초록 씨앗이자,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에요. 2018년 3월부터 제주에서 ‘그린디자이너’로 ‘반농반업’하며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2018년에는 ‘강정공소회장’ 님과 쥐이빨옥수수를, 2019년에는 우도 땅콩 등의 생태 농사와 선흘의 숲밭을 가꾸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2012년 겨울에는 태풍에 누워버린 독새기콩을 거두며 <콩쥐와파치> 소모임으로 ‘콩쥐야, 밥은 먹고 다니니?’를 시작했어요. 최근 3년 동안 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 회원으로 씨앗 나눔과 토종씨앗실태조사 그리고 토종씨앗을 증식하기 위한 농사 ‘토종증식포’를 지으며 고군분투 중인데요.
그는 2024년 <제주밭한끼> 캠페인에 참여해 워크숍을 기획했어요. 그린씨만의 특별한 워크숍이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들어볼게요. “섬 제주는 지역마다 농사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지역의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콩쥐와파치>의 생태 농사와 삶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제주의 밭, 숲밭, 풍경, 삶, 씨앗을 함께 심고 가꿔야 즐겁더라고요. 농사도 밥도, 우리 함께 이어가요!”
듣기만 해도 마음 따뜻하게 하는 말인데요. 무엇인가를 함께 이어가기를 바라는 그린씨의 남다른 워크숍 <채집하고, 그리고, 계절 담아가기>는 이렇게 진행되었어요.
채집하고, 그리고, 계절 담아가기
-늦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제주 계절을 맛보는 시간
지난 9월 6일 한경면, 애월 등 제주 각지에서 찾아온 청년들이 초록씨그린씨의 아지트, 숲밭이 있는 공간으로 찾아왔어요. 도착하자마자 준비된 보리개역을 시원하게 마신 후에 초록씨그린씨가 가꾸는 공간 주변의 숲길을 함께 걸었어요. 그린씨가 자신의 나이만큼 심고 있는 나무들을 살펴보았고 숲길마다 펼쳐진 야생밭의 생태계를 감상했어요. 가을을 부르는 작은 빗방울이 타닥타닥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함께 모인 청년들 누구도 빗방울을 걱정하지 않았어요.
초록씨그린씨가 미리 준비한 야외 공간에서 청년들은 다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제주밭에서 맛보는 ‘밭한끼’였는데요. 숲에 둘러싸여 먹는 식사라 그런지 모두들 맛있다며 제주밭한끼의 매력에 반해버렸죠.
그린씨에게 이번 워크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어봤는데요. 직접 들어볼게요.
“기후위기의 최전선인 섬, 제주에 살아가는 주체적인 30~40대 또래 청년들과 만나, 제가 살아가는 제주 산골 마을에서 이어가는 씨앗들과 함께 좌충우돌 생태농사를 짓고, 야생이 넘치는 숲밭을 가꾸는 조화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맛보고- 그리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숲밭을 거닐며 삶을 이야기하고 밭한끼 나누는 시간이 끝난 후, 그리는 시간을 가졌어요. 바로 살아온 만큼 나이테를 그리는 건데요. 우선 그린씨가 천에 목탄으로 그린 작품을 감상했어요. 자신의 나이만큼 나이테를 그리되 굴곡지고 힘든 순간에는 나이테의 굵기가 굵어지고 묵직해졌죠. 결코 쉬운 그림이 아닐 거예요. 참가자들은 둘씩 짝을 이뤄 신중히 자신의 나이테를 그렸습니다. 그사이 비가 그쳤습니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이번 워크숍은 제주밭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그린씨에게 직접 이 공간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어요.
“2018년 3월에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숲밭은 잔디밭이었어요. 숲밭 주변으로는 주인을 모르는(4·3에 잃어버린 마을/백화동) 숲이 울타리처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지요. 그때만 해도 제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될지 몰랐답니다. 2019년 제주제2공항-비자림로 숲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저는 베어지는 숲으로 삶을 옮기게 되었고, 바로 옆 마을인 이곳 산골 마을의 숲밭을 빌리게 되었어요. 2020년에는 친구들의 손을 빌려 작은 온실(작업실)과 틀밭을 만들고, 2022년에는 제 나이만큼의 나무를 심었답니다. 당연히 울타리 숲에서 날아온 꽃씨와 풀씨 그리고 나무 씨앗도 품었지요. 그리고 작년부터는 적극적으로 재야생화(Rewilding)를 꿈꾸며 혼디자왈(더불어숲,비영리단체)활동을 하며 제주도에 자생하는 나무들을 삽목해서 키우고 있답니다.”
그린씨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 공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데요. 이곳의 이름 ‘숲밭 <다음에 올 너에게>도 특별하답니다. 대안학교 ’동백작은학교‘ 친구들이 숲밭으로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짓게 된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숲밭에서는 ’선흘녹색평론모임‘, ’책읽기모임‘ 그리고 대안학교 친구들과 ’더불어숲숨수섬‘, ’그린디자인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요.
또한 <콩쥐와파치> 소모임을 진행하는 조천읍 ’와흘증식포‘는 토종 씨앗을 증식하기 위한 전여농제주도연합 식량주권위 산하의 증식포 중 한 곳이라고 해요. 이곳에서는 토종작물(동아호박, 맷돌호박, 물외, 서리태, 제주푸른독새기콩, 검은찰옥수수, 올들깨 등)을 기르고 채종하고 있다고 해요.
제주밭에서 자연과 가까이 생활하며 토종작물의 생명을 이어가는 초록씨그린씨의 활동은 끝이 없는데요. 워크숍에서 함께 자신의 나이테를 새기는 참가자들도 어느새 초록씨그린씨와 같은 마음으로 생태적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거겠죠. 어느새 완성된 여러 개의 나이테 그림들, 그리고 계속되는 그들의 삶 이야기는 제주밭한끼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제철 재소와 풍경을 마음에 담은 사람들, 그들에게 제주밭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린씨가 답합니다.
“제가 사는 섬, 제주의 중산간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라 생명들의 삶터예요. 그래서 무엇이든 깨끗하게 돌려주고, 좋은 흙과 깊고 푸르른 숲의 형태를 잃지 않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여전히 생태농사와 생태적 삶을 어렵지만, 놓을 수 없는 씨앗 그리고 생명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제게 제주밭은 숲밭의 풍경을 가꾸는 삶이고, 흙과 나무와 더 가까이 지내고 지렁이, 벌과 나비와 협력하여 생동하는 자급자족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부탁하고 싶어요. 부디 제주밭과 잘 지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