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토종 씨앗, 선순환의 여정
: 씨앗에게 배울 점 혹은 씨앗의 태도에 대하여
사회적 예술가로서, 그리고 씨앗매개자로서 토종 씨앗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제주에 살고 있어요. 순수 예술을 전공했고 졸업 후 공공예술 분야에서 활동했던 그는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 제주로 이주했는데요. 직접 텃밭 농사를 지으며 토종 씨앗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다고 해요. 그는 토종 씨앗이 품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씨앗매개자’라는 직업까지 창직했는데요. 2023년 초에는 <씨앗바람연구소>를 열고 토종을 매개로 하는 먹거리 워크숍, 식문화 워크숍, 토종 씨앗의 태도를 전하는 전시 등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토종 씨앗의 의미와 가치를 확산하고 있는 강나루 씨앗매개자로부터 토종 씨앗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토종 덕후로 지내면서 토종 씨앗에 대한 경험을 쌓다 보니까 지금 우리 시대의 토종 씨앗이 계속 보존되고 이어지게 하려면 다양한 분야로 확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씨앗매개자’를 창직하게 됐어요.”
없으면 만들자! 나루 씨는 그러한 신념으로 토종 씨앗의 세계에 발을 들였어요. 그는 토종 씨앗이 설 자리가 없는 지금, 토종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는데요. 그날부터 그는 농부였다가, 요리연구가였다가, 아티스트 혹은 기획자의 삶을 고군분투하며 토종 씨앗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이주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노지에서 밭을 일구면서 토종 씨앗에 대한 경험이 확장됐고요. 개인의 텃밭 경험을 넘어서 여성농민회라든지 자연 농사짓는 분들의 농사 소모임이라든지, 이런 지역 공동체 활동도 하고요. 또 ‘토종 종자 실태조사’를 위해 지역의 씨앗을 지켜오신 분들을 찾아뵀어요. 지금은 토종 씨앗을 매개로 하는 먹거리 워크숍, 식문화 워크숍, 그리고 전시장에서 제가 씨앗에게 배운 점 혹은 씨앗의 태도와 토종 씨앗이 품은 이야기들을 예술의 언어로 보여주는 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토종 씨앗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우리에게 토종 씨앗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토종 씨앗이 있어야지 새로운 시장을 위해 개발 개량되고 연구할 토대가 마련되므로 국가에서 토종은 중요한 유전자원이에요. 세계적으로도 씨앗을 돈 주고 사야 하는 게 현실이고요. 또, 씨앗과 연결된 다국적기업이 화학적인 부분과도 관련 있어서 토종 씨앗을 산업의 영역으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국가에서도 끊임없이 종자 실태조사를 한다든지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저의 경우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주인 삶과 문화로서 씨앗매개자 역할을 하는데요. 씨앗은 당연한 자연 생명의 순리이고 그 자체로 생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선순환의 여정이에요.”
그는 또 이렇게 말했어요. “아무리 토종 씨앗이 사라지고 많이 없다고 해도 아직은 남아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요. 토종 씨앗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은 많이 있다는 건데요. 그가 토종 씨앗을 이어가는 일에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우리의 자립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먼 훗날, 우리 땅에서 비롯된 토종 씨앗이 없을 때 우리는 결국 다른 나라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 먹거리의 본질을 지키는 일임을 우리가 기억해야겠죠?
나루 씨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부지런히 전시 활동도 하는데요. 그중에서 제주에서 진행된 <탈립展>을 소개해주셨어요.
“토종 씨앗이 심어지고 자라서 다시 씨앗이 맺히는 동안 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씨앗들이 저에게 보여주는 어떤 지점들이 있는데 토종 콩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탈립 현상이에요. 탈립은 토종 곡물이 익어 그 꼬투리가 열려서 스스로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러한 현상이 콩에 있어서는 수확량의 소실이고, 쉽게 꼬투리가 열리면 제때 기계 농사로 작물을 거두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개발되고 개량되어야 할 특징이에요. 특히나 전시한 제주 토종 잠두는 야생성이 두드러져서 탈립 현상이 더 크게 보이는데요. 저는 이러한 탈립 현상이 식물이 그 자체로 자기 생을 이어가려는 씨앗의 태도로 보였고, 스스로 흙으로 떨어져서 다시 생을 이어가는 게 자기 주체성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태도와 닮았다고 해석했어요.”
표면적으로 봤을 때 불편한 자연의 법칙이지만, 긴 시간을 공들여 살펴보면 자연의 순리인 것들이 있습니다. 토종 씨앗의 탈립 현상이 그러한 예인데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토종 씨앗이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 삶을 한 번쯤 돌아본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씨앗매개자인 나루 씨의 말처럼 우리도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면 더 좋겠죠!
본 콘텐츠는 제주시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 2023년 활동보고서 <제주밭한끼 : 제주밭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 책자에 실린 인터뷰 글을 재편집하여 소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