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 열두달
'걸작품'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밭, 뎅유지밭
▲ 제주시 영평동 뎅유지밭 풍경
오직 제주에서만 자라는 '당유자'는 제주말로 '뎅유지'라고도 하는데, '큰(大) 유자'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실제로 재래귤 중에서 뎅유지의 크기가 가장 크다고 해요. 아주 오래전부터 제주에서는 집집마다 마당에 뎅유지나무 한두 그루씩을 심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겨울에 부는 매서운 제주 바람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따뜻하게 달여낸 뎅유지차 한 잔에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뎅유지밭의 8월은, 향기로운 꽃망울이 진 자리에 초록초록한 아기 열매들이 태양을 견디며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열매들만 이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면 되나 싶지만, 사실 8월은 농부들이 가장 바쁘게 일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지치지 않게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정말이지 무섭게 자라는 잡초들과 끝도 없는 전쟁을 치루는 것은 모두 농부의 몫이거든요. 영평동에서 뎅유지를 키우는 농부 이원희님은 “뜨거운 뙤약볕의 예초작업은 죽을 만큼 힘들지만, 막상 끝나고 나면 그렇게 시원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다”고 하셨답니다. 영평밭에서 자란 뎅유지는 수확물 그대로 판매되기도 하지만, 농부님의 손을 거쳐 '뎅유지양갱'과 '뎅유지청'으로도 만들어집니다. 직접 수확한 원물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색다르고, 편리하며, 더욱 맛있게 뎅유지를 알리고 싶어 모든 부분을 책임지는 농부의 마음이, 마치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처럼 느껴집니다.
영어로 '시'를 뜻하는 'Poem'은 '탁월한 작품'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답니다. 한창 영그는 중인 여름 뎅유지밭에서, 수개월 뒤 노란 물결을 이룰 상큼하고 커다란 뎅유지의 결과물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시처럼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요?
▲ 뎅유지청